궁금한 인물 이야기
⊙ 윤이상, 데즈카 오사무, 로버트 피어리, 힐러리, 손기정, 가가린
세계적인 현대 음악가인 윤이상은 어디서 태어났을까요?
윤이상의 베를린 집에는 한반도 모형을 본떠 파놓은 남과 죽의 경계가 없는 연못이 있습니다. 살아생전 조국 분단의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1988년엔 판문점에서 남북 음악회를 열 것을 제안했고 1990년 통일 음악회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의 축전 오페라로 윤이상의 '심청'이 막을 올렸는데 정작 서울에서는 27년이나 지난 1999년에야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16살인 1933년 일본 오사카 음악 학원에 입학해서 작곡, 음악 이론 및 첼로를 공부했고 1956년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과 베를린 음대에서 작곡과 음악 이론을 배웠습니다.
10년 뒤 독일에서 '예악'연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광주여 영원히'란 교향시로 한국 전통 음악을 현대 음악에 접목한 '현대 음악의 메시아'라고도 불립니다.
베를린 예술 대학의 교수였던 윤이상의 목관 음악이 지금도 유럽의 주요 콩쿠르에서 과제곡으로 채택됩니다.
만화왕국 일본의 1번 타자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은 무엇 무엇이 있을까요?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우주 소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등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낯익은 작품들로써 리본을 만화 왕국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 작품들 모두 바로 데즈카의 작품입니다. 중학교 졸업반 때인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하기 몇 달 전 대공습으로 불바다가 되는 광경을 옥상에서 본 뒤 전쟁의 참혹함에 고개를 내젓고 현실이 아니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던 데즈카는 1961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내던지고 만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데즈카는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잘 그렸으며 어머니도 별로 나무라지 않았고 나중에는 좋아하는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도록 격려까지 해주십니다. 대기업의 간부인 아버지를 따라 디즈니의 만화 영화를 보면서 꿈을 키웠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만화를 그렸습니다.
결국 의대를 졸업했으나 오사무는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의 만화 주인공 아톰이 일본을 최고의 전자 산업 국가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한 사나이 로버트 피어리는 어디를 탐험했을까요?
피어리는 1909년 4월 6일 마침내 북극점에 도달했습니다. 여섯 번의 실패를 딛고 북극 탐험에 나선 지 23년 만의 쾌거였습니다. 53세의 나이로 8개의 발가락을 동상으로 잘라내고 남은 단 2개의 발가락으로 해낸 것입니다. 185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크레슨에서 태어난 피어리는 1881년에 해군에 입대해서 1911년 해군 소장으로 제대했으며 북극점 탐험도 군인으로 있으면서 이룩해 낸 것입니다.
피어리의 북극에서의 동경은 1886년 그린란드의 얼음 벌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피어리가 승선한 루스벨트 호는 1908년 8월 1일 그린란드 북서쪽에 닻을 내리고 에스키모 22명과 썰매를 끌 개 250마리를 태우고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로 빙산을 깨며 앞으로 나가 1909년 2월 그린란드 최북단에 이르렀습니다. 북극점까지 660km가 남아 있었습니다.
얼음산과 골짜기를 헤치고 개썰매는 기온이 영하 59도 인데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드디어 성조기를 북극점에 꽂고 30시간이나 머물며 반경 60km를 조사한 피어리는 북극이 육지가 아닌 3,000여 미터 깊이의 바닷물 위에 덮인 거대한 얼음 덩어리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세계 최고봉 초모룽마에 처음 오른 등산 가는 누구일까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출신인 힐러리는 어릴 때 몸이 약해서 체육 시간을 싫어했습니다.
허약했던 힐러리는 자라서 꿀벌을 키우는 양봉가가 됐습니다. 꿀벌을 키우려면 자연히 높은 산에 벌통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등산을 하게 됩니다. 힐러리는 국내의 산을 하나하나 정복했고 최정상급 등산가로 영국에까지 이름이 자자했습니다.
힐러리는 1951년 영국 등산가의 요청으로 초모룽마 정찰대에 참가해서 운좋게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초모룽마는 티베트에서 에베레스트를 부르는 이름으로 '세계의 여신'이란 뜻입니다. 힐러리는 이원정대의 2대였으나 1대가 날씨가 나빠서 물러나는 바람에 행운을 쥐었습니다. 마침 힐러리의 등정은 1952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전날이었고 기사 작위까지 받게 됐습니다.
8,848m의 초모룽마 봉을 정복한 이후 힐러리는 1958년엔 남극 대륙 횡단에 참가해서 세 번째로 남극점 도달에도 성공했고, 1977년엔 제트 보트를 타고 갠지스 강을 거슬러 올라 히말라야에 있는 발원지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베를린에서 눈물의 월계관을 쓴 손기정은 무슨 운동선수였을까요?
1936년 8월 9일 손기정은 조선인으로 가슴에 일본 국기인 일장기를 달고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을 출발했습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어도 너의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조선인의 기백을 보여 주리라는 각오로 베를린 시내의 비스마르크 언덕을 넘어 우승 테이프를 끊었고, 함께 출전한 남승룡은 3위로 들어왔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통치로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던 국민들은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듣고 목놓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동아일보'는 일본 국기가 보기 싫다고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신문사는 정간 처분을 받고 사장과 담당자는 체포까지 되었습니다.
손기정은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이었지만 뜀박질만은 잘했습니다. 그 덕으로 육상 명문인 야정고동 보통학교를 졸업했고 광복 후에는 국민 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습니다.
서울 중구 만리동 2가에 있는 손기정 공원에는 1936년 독일에서 받아온 월계수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서울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는 누구일까요?
소련의 가가린은 어린 시절 동네에 비상 착륙한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중학 시절엔 소련의 물리학자 치올로코프스키의 공상 과학 소설을 ㄹ읽은 뒤부터 우주로 관심을 돌리게 되어 항공 클럽에 가입해 비행기 조종법을 익혔고, 우수한 성적으로 항공 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을 때인 1960년에 다른 조종사들과 함께 우주 비행사로 뽑혔고 엄격한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가가린은 교과 성적이 1등은 아니지만 빠른 결단력과 지도력, 동료들의 신뢰로 첫 번째 우주 비행사로 발탁되었습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우주 개발 전쟁을 벌일 때입니다.
1957년 소련이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항곡 우주국을 만들어 익스플로서 1호를 쏘아 올리자 이에 뒤질세라 소련은 1959년 1월 루나 1호를 달로 발사했고, 미국도 원숭이 2마리를 로켓으로 쏘아 올렸습니다.
가가린이 탄 보스토크 1호는 1961년 4월 12일 발사되어 시속 28,000km로 지구를 한 바퀴 돈 뒤 무사 귀환합니다. 최초의 성공한 우주 비행사인 가가린이 한 말은 '지구는 푸른빛이었습니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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