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한글 우리말 유래
⊙ 까치설, 멍텅구리, 바가지 긁는다, 내 코가 석자, 주먹구구, 벽창호, 애창곡 18번, 도루묵
설 하루 전날을 ' 까치설 '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설날에 많이 부르는 이 동요에는 '까치설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요?
'까지 설날'은 설날 하루 전, 곧 섣달 그믐날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까치설이 우리가 세는 설날보다 작다 하여 '아찬설'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찬'이 ㅈ'작은'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찬 설이란 작은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찬'이란 말이 자주 쓰이지 않게 되면서 발음도 '아치'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찬설'은 '아치설'이 되었겠습니다. 이 아치설이 지금과 같은 까치설로 변한 것입니다.
아치설이 까치설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까치는 우리 조상들과 가까운 새였고, 그 발음 또한 비슷했기에 그러한 것이 아니가 추정됩니다.
' 멍텅구리 ' 는 본디 무엇을 가리킬까요?
오랜만에 동생의 공부를 도와주던 현빈은 참았던 화를 터뜨렸습니다.
"야, 이 멍텅구리야! 너는 몇 학년인데 구구단도 못 외우니?"
이처럼 우리는 어리석고 좀 모자란 것 같은 멍청이를 가리켜 말할 때 '멍텅구리'란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멍텅구리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본래 멍텅구리는 바닷물고기의 이름입니다. 이 물고기는 못생겼을 뿐만 아니라 동작이 느려서 큰 위험이 닥치면 스스로 위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답니다.
이러한 멍텅구리 물고기의 습성을 사람의 행동에 빗대어 오늘날과 같은 표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목이 좀 두툼하게 올라와서 못 생긴 병을 일컬을 때도 '멍텅구리'라고 합니다. 한편, '멍텅구리 낚시'는 미끼 주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서 거기에 고기가 걸려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아빠는 왜 ' 바가지를 긁는다 ' 고 할까요?
오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머님, 아버님이 한바탕 말다툼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아버님께서 무슨 잘못을 했나 봅니다. 어머님이 아버님께 조곤조곤 따지시자 아버님은 그놈의 잔소리 좀 집어치우라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바가지를 긁히지 않으려면 잘하라고 되받아 치십니다.
'바가지를 긁는다'는 것은 남의 잘못을 나무라는 것으로, 대개 아내가 남편에게 심하게 잔소리를 할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은 표현을 하게 되었을까요?
의학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던 옛날에는 마을에 전염병이 돌거나 몸이 아프면 민간 요법으로 치료를 하거나 주적이나 굿과 같은 무속의 힘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귀신을 쫓기 위해 바가지를 득득 긁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귀신이 시끄러워서 달아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염병과 같은 전염병이 돌 때 처용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서 대문에 붙이기도 하고, 병을 예방하기 위해 동짓날 붉은 팥죽을 쒀서 먹기도 했답니다.
' 내 코가 석자 ' 란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요?
어제 선생님은 매우 중요한 숙제라며 꼭 해오기를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숙제가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던 종국이는 수업 시작 전에야 친구인 재석이의 것을 빌려서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모범생인 원빈은 어제저녁 숙제를 다 해 두었기에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만 그것을 책상 위에 두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원빈이 종국이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종국이는 자기 코가 석 자 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의 일이 매우 급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여유가 없을 때 '내 코가 석 자'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떻게 해서 생긴 말일까요?
이 속담에 등장하는 '코'는 '콧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자는 약 30cm이나까, 석 자면 약 90cm쯤 되겠지요. 그러니까 내 코가 석 자라는 속담을 풀어서 말하여, 내 코에서 못물이 90cm쯤 흘러나왔으므로 다른 사람이 흘리는 콧물은 닦아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처지가 다급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라는 속담 역시 눈앞에 닥친 다급한 일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이 닥쳤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 주먹구구 ' 란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선생님께서는 '우리 말의 오염 실태'에 대한 합동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한 팀이 된 현빈과, 원빈, 동건은 각자 분야를 나누어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숙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현빈이 며칠이 지나도록 손을 놓고 있습니다. 걱정이 된 원빈과 동건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현빈은 대충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칩니다. 그러자 깐깐한 동건이 소리 질렀습니다.
"야, 이것은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란 말이야!"
이처럼 우리는 어떤 일을 얼버무려 대충대충 처리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계산을 할 때 '주먹구구'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은 표현을 하게 되었을까요?
구구단을 알지 못했던 예전 사람들은 손가락과 주먹을 이용하여 곱셈을 했답니다. 손가락과 주먹을 이용해 계산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틀리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요. 그래서 정확하지 않은 계산을 할 때 주먹으로 구구단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주먹구구'란 말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 벽창호 ' 한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요?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크고 듬직하게 생긴 호동이에게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수근이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해도 호동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졸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죠. 보다 못한 장훈이가 수근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 될 걸. 호동이 별명이 괜히 벽창호겠니?"
이처럼 '벽창호'란 무척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벽창호'는 '벽창우'에서 나온 말입니다. 벽창우는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지역에서 나는 크고 억센 '소'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지역의 소들은 고집과 힘이 유난히 세서, 낯선 사람이 끌고 가려고 하면 억척스럽게 버티어 절대 끌려가지 않았답니다.
이와 같은 소의 특성에 빗대어 사람을 표현한 것이 '벽창호'입니다.
벽창호 같은 사람은 때로 융통성이 없고 미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념을 벽창호 같이 지키는 충신들의 활약은 나라를 위험에서 구하기도 한답니다.
자신의 애창곡을 ' 십팔번 '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설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종국이네는 가족 장기 자랑을 하기로 했습니다. 종국이가 노래를 한다고 하니까 진행을 맡으신 이모부가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의 귀여운 조카 종국이의 십팔번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자기가 가장 잘해서 자랑으로 여기는 일이나 장기를 가리킬 때 '십팔번'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이와 같은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요?
본래 '십팔번'은 일본에서 공연되던 연극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일본의 전통 연극(가부키)을 하던 이치가와 가문에서는 십팔번으로 짜인 '교오겡'이라는 연극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마지막 십팔 번째 연극이 제일 재미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십팔번이라는 것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팔번은 가장 재미있는 연극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그것의 뜻이 변해 오늘날처럼 쓰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본에서 건너온 '십팔번'보다 '애창곡'이나 '장기'란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 도루묵 ' 이란 표현은 어떤 경우에 쓸까요?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종국이는 부모님 심부름을 열심히 하여 간신히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러 가기로 한 전날, 하필이면 엉망인 성적표가 도착했습니다. 화가 나신 부모님은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벌을 내리셨고, 그동안 종국이의 노력은 말짱 도로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애쓰던 어떤 일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거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표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조선 선조 25(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군이 한양 근처까지 쳐들어오자 임금은 궁궐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피난길은 무척 고생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충분치 않았지요. 그때 한 백성이 '묵'이란 생선을 임금에게 바쳤고, 임금은 맛있게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생선의 이름이 그것의 훌륭한 맛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이름을 '은어'라고 고쳤습니다. 그런데 한양으로 돌아와 은어를 다시 먹어보니, 그 맛이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그 생선의 이름을 도로'묵'으로 바꿔 부르게 했답니다. 여기에서 '도루묵'이란 표현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도루묵이란 바닷물고기는 입이 크고 넓적하게 생겼으며, 비늘이 없고 등 쪽에는 황갈색, 배 쪽에는 은백색의 빛이 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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