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인물에 대해 알아볼까요?
궁금한 인물 이야기
⊙ 벨, 뢴트겐, 링컨 대통령, 앙리 뒤낭, 광개토대왕, 왕인, 왕산악, 파브르
전화는 누가 발명했을까요?
영국 사람 벨이 전화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런던 대학을 다녔는데, 런던 대학에는 무선 전신을 발명하여 그 이름을 세계에 떨쳤던 호이트만 교수가 있었습니다. 벨은 먼 거리에다 소리를 전할 수 있는 이치를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 전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는데, 그리하여 1876년 3월 10일에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화를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벨은 1880년 '사이언스'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과학 발전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엑스선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병원에서 엑스선(X-Ray) 사진을 찍으면 몸 안에 있는 뼈들이 보입니다. 의사들은 이 사진을 보고 우리 몸에 무슨 병이 있는가를 알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뢴트겐은 광선은 납처럼 밀도가 큰 물질을 뚫고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엑스선을 통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자연 과학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쳤을뿐만 아니라, 병의 치료와 예방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흑인을 해방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링컨은 어렸을 때 쇠사슬에 묵여 끌려가는 흑인 노예들을 보고 흑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51세 때 제16대 미국 대통령이 된 링컨은 노예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혹사당하는 흑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로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은 4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때 링컨은 노예 해방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은 외국에서도 호평을 받아 북부를 지원하는 나라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링컨이 이끄는 북부가 결국 승리하게 되었고 노예 해방도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적십자를 처음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무리 전쟁터라 하더라도 부상자와 병자는 적군이나 아군의 구별없이 모두 간호해야 한다'는 앙리 뒤낭의 생각과 노력이 열매를 맺어 1863년 10월 25일에 제네바에서는 세계 16개 대표들이 모여 국제 적십자를 탄생시키기 위한 회의를 열었습니다. 적십자에 대한 표시로는 앙리 뒤낭의 모국인 스위스의 깃발을 거꾸로 한 흰 바탕에 빨간 적십자가 그려진 것을 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1901년에 스웨덴 정부는 이처럼 전쟁 중에 다친 병사들을 위해 노력한 앙리 뒤낭을 제 1회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 적십자 위원회는 뒤낭의 생일인 5월 8일을 '적십자 평화의 날'로 정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어떤 사람인가요?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왕이었는데, 18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21년 동안 왜구를 물리치고, 북쪽의 여러 작은 부족 국가를 굴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복한 땅에는 '광개토대왕비'를 세워 자신의 영토임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광개토대왕비가 지금도 만주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해야 국력이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직접 농가를 찾아다니며 농부들을 격려하고, 농사짓는 법을 개량하여 더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씨름대회, 활쏘기, 말타기 등의 무술대회를 전국적인 행사로 개최하고,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왕인이 일본 역사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을까요?
왕인은 백제의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일본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을까요? 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를 경계하기 위해 중국, 일본과 수교를 맺는 외교정책을 폈습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크게 환영하여 곧바로 백제의 수도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본은 다른 나라로부터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제에서는 일본에 문화를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었고, 이러는 과정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왕인은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은은 일본으로 건너갈 때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갔는데 일본왕의 요청으로 여러 신하를 가르치며 문화를 전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역사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로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거문고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거문고는 선조들이 사용했던 악기 중의 하나로 여섯 개의 줄로 이뤄진 악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기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고구려 제 24대 임금인 양원왕 때 왕산악이라는 국상이 중국의 칠현금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그는 고구려 사람들의 체질과 기분에 맞는 다른 악기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오동나무 속을 비우고 그 위에 여섯 줄의 줄을 걸고 그 밑에는 줄을 괴는 기둥인 홰나무괘를 16개 세워 '거문고'라는 새로운 악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악기는 소리가 맑고 점잖았으며 한편으로는 우렁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산악이 악기를 타고 있를 때 어디에선가 검은 학이 날아와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현학금'이라고도 부릅니다.
파브르를 왜 곤충들의 친구라고 부를까요?
파브르는 곤충들을 관찰하여 이것을 10권의 '곤충기'로 남긴 사람입니다. 파브르는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마을에 있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카르팡트라스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몽펠리에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배운 뒤 1849년 코르시카의 아작시오 중학교의 물리학 교사가 되었습니다.
4년 후에 아비뇽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에 임명되었으며, 이 학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파브르는 1854년 31 세 때 어느 겨울에 레온 뒤프르의 소책자를 읽고 감명을 받아 곤충 연구에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듬해 노래기벌의 연구를 발표하였고, 얼마 후 아비뇽의 르키앙 박물관장에 임명되었으며, 1886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관학파의 공격과 비난으로 인해 교단과 박물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였으며, 과학보급서를 저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1878년에 마지막 거처인 세리냥의 아르마스로 이사하여, 그 유명한 '곤충기'를 출판하였습니다. 1910년에는 파브르 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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